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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gFamily

2011.03.22 00:05

정요셉 님 안녕하세요,


곡구공파의 파조이신 곡구공 휘빈은 임진왜란시 대단한 활약을 하신 분입니다,

아래내용은 경주정씨대관에 있는 공의 약력을 발췌한 내용이니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ksc

 


--곡구공 휘 빈-----

 

정 빈(鄭 빈)

1566년(명종21) 4월 22일에 순천(順天)의 본제(本第)에서 태어나니 자는 공백(恭伯)이고

호는 곡구(谷口)로 병조참판(兵曹參判) 옥계공(玉溪公) 휘승복(諱承復)의 손자이고

충무위부사직(忠武衛副司直) 휘사익(諱思翊)의 둘째 아들로 우산(牛山) 안방준(安邦俊) 선생(先生)의 문인(門人)이다. 

 

1592년(선조25) 임진(壬辰)에 왜구(倭寇)의 난(亂)을 만남에 공의 나이 27세로 임금이 서쪽으로 피난을 떠나

명령이 전달되지 못하여 군량(軍糧)이떨어지고 임금의 음식마저 궁하게 됨을 듣고

재산을 떨고 지방에서 모아 의곡(義穀) 일천석을 마련하여 바닷길을 이용하여

전라좌도(全羅在道) 수군절도사(氷軍節度使) 충무공(忠武公) 이순신장군(李舜臣將軍)의 장계(狀啓)와 함께

임금에게 받치니 선묘보감(宣廟寶鑑)에 이르기를

"전라도에 사는 선비가 의곡을 바닷길을 이용해 의주(義州)까지 실어 왔다" 하였고

임금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착함을 칭찬하고 특별히 사온서(四醞暑) 봉사(奉事)를 제수하였다.


1593년(선조26) 계사(癸巳)에 서울로 환도(還都)함에 사포서(司圃署) 별제(別提)로 옮기었고

1605년(선조38)에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이등에 녹훈(錄勳)되었으며 계속해 군기시(軍器寺) 주부(主簿)와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을 역임하고 1612년(광해4) 임자(壬子)에 외직(外職)으로 나아가

낭천현감(狼川縣監)이 되어 치적(治績)이 들어나 조정에서는 공(公)에게 어머니를 낭천(狼川)으로 모시고 가서

봉양할 것을 허락받아 4년만에 어머니가 돌아가니 낭천 백성의 남녀들이 모두 조상(弔喪)하고

거후사비(去後思碑)를 세웠고 1624년(순조2) 갑자(甲子)에 직산현감(稷山縣監)에 임명되었으며

1628년(인조6) 무진(戊辰)에 전의현감(全義縣監)이 되었고 다음해에 아산현감(牙山縣監)이 되었는데

계자(系子)인 지수(之授)가 관아(官衙)에서 돌아감으로 벼슬에 뜻이 없어 물러왔다.

 

부인은 옥천조씨(玉川趙氏)로 윤연(潤璉)의 딸이며 공은 1640년(인조18)년 경진(庚辰) 11월 18일에

집에서 돌아가시니 묘는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住岩面) 요곡리(蓼谷里)의 간좌(艮坐)에 합부(合袝)되었고

1800(정조24)년 경신(庚申)에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承政院) 좌승지(左承旨)에 추증되었다.

 

출처: 경주정씨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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