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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인물

조회 수 7400 추천 수 0 2009.05.13 21:11:27

고려시대(高麗時代)

정사맹(鄭師孟):
  고려(高麗) 때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다.

 

정유천(鄭遊天): 시호(諡號)는 정간(貞簡)
  고려에서 도관찰사(都觀察使) 겸 안무지휘사(按撫指揮使)를 역임 하였다.

 

정현성(鄭玄成): 시호(諡號)는 경렬(景烈)
 

고려조(高麗朝)에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으로 금오위 장군(金吾衛將軍)을 역임하고, 계림군(鷄林君)에 봉(封)해졌다.

 

정심(鄭審):
  고려(高麗) 때 전객(典客) 서령(署令),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를 거쳐 판이부사(判吏部事)를 역임하였다.

 

정달강(鄭達康):
  고려조(高麗朝)에 추밀원(樞密院) 지주사(知奏事) 좌복야(左僕射) 등을 거쳐 이부(吏部) 상서(尙書)에 오르고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다.

 

정경문(鄭景文):
  고려(高麗) 때 흥위위 상장군(興威衛上將軍)을 지냈다.

 

정성지(鄭性之):
  고려 때 봉익대부(奉翊大夫)로 밀직부사(密直副使), 이부(吏部) 상서(尙書)를 역임하였다.

 

정균지(鄭均之):
  고려(高麗)에서 좌복야(左僕射),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역임하였다.

 

정손경(鄭遜卿): 초명(初名)은 원녕(元寧), 호(號)는 동양(東陽)
  고려 예종(睿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판문하시중(判門下侍中), 이부(吏部) 상서(尙書)로 월성군(月城郡)에 봉해지고. 판밀직원사(判密直院使), 응양위(應揚衛) 대장군(大將軍)을 역임하였다.

 

정극중(鄭克中):
  고려(高麗) 때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 광록대부(光祿大夫)로 검교(檢校) 첨의평리(僉議評理), 예부(禮部) 상서(尙書) 등을 역임하였다.

 

정극온(鄭克溫): 호(號)는 익렬(翼烈).
  고려 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이부(吏部) 상서(尙書)를 지냈으며, 재직(在職) 시(時) 북벌남정(北伐南征)에 대공을 세워 대장군(大將軍)이 되고, 어사대부(御史大夫), 참지정사(叅知政事)등을 역임하였다.

 

정필(鄭弼): 호(號)는 송포(松圃).
  고려 때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으로 중추원사(中樞院使)를 거쳐 한림학사(翰林學士)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렀다

 

정진후(鄭珍厚): 호(號)는 매포(梅圃). 시호(諡號)는 문정(文正).
  예부(禮部) 상서(尙書) 극중(克中)의 아들. 고려(高麗) 때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오르고 정당문학(政堂文學), 병부(兵部) 상서(尙書), 판군기시윤(判軍器寺尹) 등을 거쳐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렀고 이학(理學)과 문장(文章)으로 유명했다.

 

정금실(鄭金實):
  고려(高麗) 때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에 오르고 검교(檢校) 대장군(大將軍)으로 치사(致仕)했다.

 

정재(鄭材):
  고려조(高麗朝)에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에 올라 한림학사(翰林學士), 정당문학(政堂文學)을 거쳐 이부(吏部) 상서(尙書) 좌복야(左僕射)를 지냈다.

 

정보기(鄭寶奇): 시호(諡號)는 창렬(昌烈).
  고려(高麗) 때 병마(兵馬) 도원수(都元帥)를 거쳐 도첨의 우정승(都僉議右政丞)을 역임하고, 태자(太子) 소보(少保) 대장군(大將軍)으로 치사(致仕)했다.

 

정이기(鄭頥奇):
  고려조(高麗朝)에 월성위(月城尉)에 봉(封)해졌다.

 

정원좌(鄭元佐):
  고려(高麗) 충렬왕(忠烈王) 때 중랑장(中郞將)을 거쳐 우복야(友僕射),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고 강주군(康州君)에 봉(封)해졌다.

 

정위(鄭偉):
  고려 때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로 형부(刑部) 원외랑(員外郞),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호부(戶部) 상서(尙書), 문하시중(門下侍中) 등을 역임하였다.

 

정교(鄭橋):
  1309년(충선왕 1) 문과(文科)에 급제한 후 가정대부(嘉靖大夫)로 사재경(司宰卿)을 지냈다.

 

정을린(鄭乙麟):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때 판도(版圖) 판서(判書)를 지냈고, 삼사(三司) 좌윤(左尹)에 추증(追贈)되었다.

 

정현영(鄭玄英): 호(號)는 추강(秋江). 시호(諡號)는 문헌(文獻).
  고려 때 문하시랑(門下侍郞), 호부(戶部) 상서(尙書) 등을 역임하였다.

 

정공단(鄭公但):
  1313년(충선왕 5) 문과에 급제한 후 판형부상서(判刑部尙書)를 거쳐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다. 본명은 공단(公旦)인데 조선 태조(太祖)의 휘(諱)를 범하게 되기 때문에 인자(人子)를 붙여서 단(但) 자로 하였으며, 김주정(金周鼎) 둥 31인(人)과 함께 10운시(十韻詩)를 모았다.

 

정광한(鄭光漢):
  고려조(高麗朝)에 단성(丹城) 군수(郡守)를 거쳐 대장군(大將軍)을 지냈다.

 

정진(鄭璡): 호(號)는 옥봉(玉峯).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때 중현대부(中顯大夫)에 올랐다.

 

정주(鄭珠):
  고려(高麗) 때 문하시랑(門下侍郞)을 역임하였다.

 

정종철(鄭宗哲);
  고려(高麗)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정헌대부(正憲大夫)로 이조(吏曹) 전서(典書)를 역임하고,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다.

 

정종보(鄭宗輔):
  고려에서 봉익대부(奉翊大夫)로 보문각(寶文閣) 대제학(大提學), 지경연춘추관사(知經筵春秋館事)를 역임하였다.

 

정자초(鄭子楚):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때 유비창(有備倉) 승(承)을 역임하였고,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이조(吏曹) 판서(判書), 대제학(大提學)에 증직(贈職),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다.

 

정기(鄭其): 자(字)는 자군(子君)
  조선초(朝鮮初)에 은일(隱逸)로 종묘서(宗廟署) 주부(主簿)를 거쳐 의성(義城) 현감(縣監), 사헌부(司憲府) 지평(持平)을 역임하고, 호조(戶曹) 좌랑(佐郞)에 이르렀다.

 

정극부(鄭克扶):
  고려조(高麗朝)에 대장군(大將軍)을 역임하였다.

 

정인용(鄭仁龍): 호(號)는 송재(松齋).
  고려 때 보승(保承) 중랑장(中郞將)을 거쳐 승정원(承政院) 좌승지(左承旨) 겸 경연(經莚) 참찬관(叅贊官)을 역임하였고, 조선(朝鮮) 태조(太祖) 때 형조(刑曹) 참판(叅判)을 제수(除授)하였으나 불사하고 고려조에 절의(節義)를 지켰다.

 

정사지(鄭思智): 호(號)는 경재(敬齋).
  고려 때 춘추관(春秋館) 대제학(大提學)으로 중국에 들어가 이부 상서(吏部尙書)를 역임하였다. 그는 정몽주(鄭夢周) 이 색(李 穡)과 더불어 성리학(性理學) 연구에 전념하여 후세 유학(儒學)의 정립에 기틀이 되었다.

 

정사우(鄭思友):
  고려조(高麗朝)에 병부(兵部) 상서(尙書)를 역임하였다.

 

정사계(鄭思啓):
  고려 때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예조(禮曹) 참의(叅議), 홍문관(弘文館) 대제학(大提學)을 역임하였다.

 

정휘(鄭暉): 1332(충숙왕 1)~?. 시호(諡號)는 문충(文忠).
  고려 충혜왕(忠惠王) 때 문과에 급제한 후 대제학(大提學),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使) 등을 거쳐 1358년(공민왕 7) 추밀원(樞密院) 부사(副使) 1360년 동북면 도지휘사(東北面 都指揮使)를 지내고, 그후 문하시중(門下侍中), 대제학(大提學)에 이르렀다. 1363년(공민왕 12) 일기도주(一岐島主)가 모반할 때 도원수(都元帥)로서 이를 토벌하여 도첨의(都僉議) 정승(政丞)이 되고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다. 후에 아들 희계(熙啓)가 조선 개국(朝鮮開國)에 커다란 공을 세우자 숭록대부(崇祿大夫)로 의정부(議政府) 영의정(領議政)에 증직(贈職),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자료:  한국인의 성씨총람(경주정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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