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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정씨 연원

조회 수 13110 추천 수 0 2009.05.13 21:08:14

경주정씨(慶州鄭氏)

시조(始祖):
  우리나라 정씨(鄭氏)의 시원(始原)을 이룬 경주 정씨(慶州鄭氏)는 진한국(辰韓國) 사로(斯蘆)의 6촌(村) 중 자산진지촌장 (觜山診支村長) 지백호(智伯虎)를 시조(始祖)로 받들고 있다.
 
경주정씨(慶州鄭氏):
 

「삼국사기(三國史記)」 와 「동경지(東京誌)」에 의하면, 지백호(智伯虎)는 기원전 117년(한무제 원수 6) 경주(慶州) 화산(花山)에 강림(降臨)하여 부족국가(部族國家)이던 사로(斯蘆)의 여섯 고을 중 자산진 지촌을 다스리면서 신라(新羅) 건국(建國)에 모체(母體)를 이루었고, 서기 32년(신라 유리왕 9) 그의 현손 대(玄孫代)에 와서 다른 다섯 촌장들과 함께 사성(賜姓) 받을때 본피부(本彼部)로 개칭(改稱)되면서 정씨(鄭氏)의 성(姓)을 하사(下賜)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신라 법흥왕 때 문화(文和)로 시호를 받았고, 656년(태종무열왕 3)에 감문왕에 추봉(追封)되었다.

그 후 경주 정씨는 시조의 후대로 내려오면서 문헌공파(文獻公派), 양경공파(良景公派), 월성위파(月城尉派),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등 크게 4파로 갈라졌고, 지손(支孫) 계통에서는 30여 본(本)으로 본적(本籍)되어 우리 나라 모든 정씨(鄭氏)의 대종(大宗)을 이루었다.

2000년 통계청이 조사한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경주정씨(慶州鄭氏)는 전국에 총 94.465가구 303.443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본관(本貫)의 유래(由來):
  경주(慶州)는 경상북도(慶尙北道) 남동부(南東部)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기원전 57년 이 곳에 6촌(六村)이 연합하여 고대국가(古代國家)를 형성, 국호(國號)를 서라벌(徐羅伐), 사로(斯蘆), 사라(斯羅)로 하고. 수도(首都)를 금성(金城)이라 하였으나 수도명과 국명을 동일시 하였다.

서기 65년(탈해왕 9) 시림(始林)에서 김씨(金氏)의 시조(始祖)가 탄생하여 국호(國號)를 계림(鷄林)으로 칭하기도 하였으나 별칭으로 사용하였으며, 307년(기림왕 10)에 최초로 국호(國號)를 신라(新羅)로 하였고, 935년(태조 18)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敬順王)이 손위(遜位)하자 처음으로 경주(慶州)라는 명칭이 생겼다. 987년(성종 6) 동경(東京)으로 개칭하고, 1008년(목종11) 별칭(別稱)으로 낙랑군(樂浪郡)이라 하다가 1030년(현종 21) 삼경(三京) 제도가 실시되면서 동경(東京)을 설치하고 충렬왕(忠烈王)때 계림부(鷄林府)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 13) 계림부를 경주부(慶州府)로 개칭하고, 여러 차례 변천을 거쳐 1895년 경주군(慶州郡), 1955년에 는 경주시(慶州市)로 승격되었다.
 

자료:  한국인의 성씨총람(경주정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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