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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공파 참의공종중

조회 수 11182 추천 수 0 2009.08.13 12:57:55

진후의 5대손 현영은 호부상서와 태학사를 거쳐 문하시중(종1품관직)의 벼슬까지 오르게 된다.   이어 현영은 문헌이라는 시호를 받아 문헌공파의 파조가 된다.

 

문헌공은 종철과 종보 두 아들을 두셨는데 그중 長子 종철은 월성군으로 문헌공파내 큰집이 되며, 

 

문헌공의 次子 종보는 안숙공으로 문헌공파내 작은집이 된다.

안숙공의 후손들은 이후  상서공파, 팔송공파, 좌윤공파, 노송정공파, 추만공파로 나뉘게 되며 이중 노송정공파는 다시 판서공파, 제안공파, 참의공파, 감사공파로 나뉘게 된다.

 

안숙공의 四子 인검의 손자 지년 노송정공은 홍문관, 사헌부를 거쳐 정4품벼슬인 성균관 사예를 맡았다. 단종이 왕위에서 내려오자 불사이군의 충절로 당숙인 홍덕과 남원 교룡산에서 은거생활을 했다. 지년의 장남 효항은 성종때 서거정등과 함께 동국여지승람, 통국통감을 집필하는데 참여했다.

 

사천문중은 노송정공 三子 효종 참의공 후손으로 참의공파에 속한다.


참의공의 아들 갑선(甲先)은 부사과(副司果)이였으며 이 분의 아들 내(鼐)는 돈용교위(敦勇校尉)니 처음으로 순천에 살았다. 이 분의 아들이 옥계공(玉溪公)이다.   


옥계공은 1555년(명종10)년 달양도(達梁島)의 왜침을 물리쳤고1559년(명종14)에 왜적(倭賊)이 다시 쳐들어오니 공이 다시 조명(朝命)을 받아 어란진(於蘭鎭)으로 달려가 한 달이 넘게 배를 타고 싸워 마침내 추자도에서 승리를 거두었는데 바람과 빗속에서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니 당시에 감사와 수사가 계속해 칭찬하는 글을 임금에게 올렸다.  


한편 1988년 편찬된 무진보에는 참의공파를 옥계공의 손자대인 56세부터 다시 참봉공파, 곡구공파, 직장공파, 통덕랑공파로 세분하는데 이럴경우 사천문중은 54세 승복 옥계공의 次子 사익 포당공의 四子 열(悅) 통덕랑공파에 속하게 된다.

 

 

출처: 경주정씨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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