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는것이 적어 어느분의 기사에 누각과 정자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50세 "노송정공 휘 지년"선조의 묘비명에 아래와 같은 기사가 있는것으로 미루어
노송정(老松亭)이란 정자가 있었으리라 짐작이 되나, 그 정자가 현존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조상 산소 아래에 정자를 지어 노송정(老松亭)이라 이름하고 스스로 망칠옹(望七翁 여섯 사람에 하나를 더한다는 뜻)이라 칭하니 그 깊은 뜻이 나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육신(六臣)에 일인을 보탠다는 뜻이다. 박공 희권이 효재(孝哉) 충재(忠哉)라 칭찬 하였고 매월당 김공 시습이 당당(堂堂)하고 늠늠(凜凜)이라 일컫었다. 그 뒤로 시골에 숨어 세상을 잊고 살다가 세조 임오(壬午 세조 八 一四六二) 정월 十九일에 노송정에서 돌아가니 듣는 사람이 원근을 막론하고 모두 실해(失楷)한 것을 슬퍼 하였으며 아버지 산소 아래 자좌에 안장 되었다.
정은아 님 안녕하세요,
제가 아는것이 적어 어느분의 기사에 누각과 정자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50세 "노송정공 휘 지년"선조의 묘비명에 아래와 같은 기사가 있는것으로 미루어
노송정(老松亭)이란 정자가 있었으리라 짐작이 되나, 그 정자가 현존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ks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