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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공 휘효본 묘갈명 역문(監司公 諱孝本 墓碣銘 譯文51세 1437-1495)   淳昌 吳翰 撰

 

공(公)의 이름은 효본(孝本)이요 자는 가윤(可允)이고 성은 정씨니 경주인이다.  원조는 평장사 문정공 진후이고 그뒤 가문이 대대로 훌륭한 인물이 있었다. 

 

六대조 현영의 시호는 문헌공이고 고조 종보는 보문각 직제학이며 증조는 보승랑장으로 증직이 통훈대부 군기시정이고 할아버지는 성균생원으로 증직이 통정대부 병조참의이며 아버지 지년은 무오(戊午 세종20 1438)에 문과에 올랐는데 성삼문 하위지 등과 함께 과거에 올랐었다.  

 

단종(端宗)이 임금의 자리에서 물러남에 돌아와 호남 남원 선영 아래에서 살다가 세상을 마치니 행직은 중훈대부 성균사예이고 증직은 숭록대부 의정부 좌찬성 겸지의금의부사이며 계림군에 봉하였고 호는 노송정(老松亭)이다.  
二百年이 지난 오늘에도 마을 이름을 노송정이라 부르니 후세 사람들이 높이 사모함을 알 수 있고 또 별호를 망칠옹(望七翁)이라 한것은 그 뜻이 나이에 있는것이 아니고 육인(六人)에 한명을 더한다는 뜻이니 공의 지조를 삼가이 지키는 근원을 가히 볼 수 있다.   

 

또 공의 형제 사이에 공(公)과 경(卿)이 서로 바라볼 정도로 많으니 근세의 추증(追贈)은 모두 공의 형제들이 귀함 때문이다.     어머니 영광주씨(靈光周氏 森溪라부름)는 현감 창(昶)의 딸로 정통2년 정사(丁巳 세종19 1437)에 공을 낳으니 공이 어려서 부터 노는것이 보통 아이들 보다 특이 하였다.  차차 자라남에 가정의 교육을 받아 학문에 마음을 두고 묵묵히 연구에 열중 하였다.
 
승의랑(承議郞)으로 세조경진(庚辰 세조6 1460)에 문과에 올라 예안현감을 역임하였고 성종 때에 가선대부로 승진하여 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가 되었다.  공이 급제로부터 시작하여 벼슬이 이품(二品)에 이르니 그 중간에 역임한 벼슬이 반드시 화려한 것이 많았을 것인데 공의 종손(宗孫) 현령 찬(纘)이 지은 묘지에는 다만 공의 성정이 깨끗하고 경전(經傳)에 전력하였으며 덕행이 세상에 뛰어난 점만 들어 칭찬하고 벼슬에 대한 이력은 언급치 않았으니 상고할 만한 문헌이 난리에 유실되어 그러한 것인지?
 
홍치 팔년(弘治 연산1 1495) 상월 이십일에 순창(淳昌) 집에서 돌아가니 나이는 오십구세로 야미산 아래 유좌에 모시었다.  부인 정부인 부계예씨(缶溪芮氏)는 참판 승석(承錫)의 딸로 경태 칠년(세조7 1456) 병자(丙子)에 공에게 시집오니 규문(규문)이 엄정하고 부덕이 어긋남이 없었다.   공이 돌아간 이듬해병진(丙辰 연산2 1496) 十一月 二十日에 돌아가 정사(丁巳 연산3 1497) 二月 九日에 공의 산소에 합장 하였다.  一男을 두니 광선(光先)으로 벼슬이 성균진사 제릉참봉이었다.  광선이 二男을 두니 함은 정평부사로 임진난에 충절을 지키다가 돌아가셨고 구는 정릉참봉으로 임진(壬辰 선조25 1592) 五月 二十八日에 형과 같이 순절하였으며 딸은 첨정 전이(全彛)에게 시집갔다.
 
함이 이남을 두니 인휘와 원경이고 구가 삼남을 두니 맏아들은 종휘이고 둘째 아들은 충인데 생원이고 셋째 아들은 서이다.
 
팔대손 양한이 정유(丁酉 정조1 1777) 문과에 올라 통훈대부 성균전적 병조좌랑을 거쳐 병자(丙子 순조16 1816)년에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에 올랐다.  나머지 내외손은 모두 약간명으로 다 기록치 못한다.
 
아! 공은 증찬성공의 훌륭한 아들로 길이 당구물체(堂構勿替)의 가르침을 쫓았고 효자(孝子)로 돌림자를 한 뜻을 우러러 생각하여 조정에 있어서는 빛나는 명예를 탐하지 않았고 감사가 되어서는 참된 정사에 힘쓰니 집안에 내려오는 법도를 가히 알 수 있다.
 
세대가 멀어서 오늘에서 공의 세상까지는 벌써 八, 九대가 지났다.  자손의 문헌이 자세히 전하지 못함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또한 공이 세상에 드러남을 즐기지 않고 끝내 사양함을 일삼아 비록 자손이라도 공의 문장을 모두 전하지 못하였고 찬양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여 그렇게 된 것인지?
 
산소 앞 옛날 비석은 없어져 찾을 길이 없고 무성한 풀속에 받침돌만 남아있을 뿐이다.  공의 후손 첨추공 양한이 슬퍼서 탄식한 나머지 비석을 고쳐 세우고저 하여 당질 문태(文泰)를 보내어 묘비문을 부탁하니 천리 먼 길을 달려와서 부탁 하는것을 저버릴 수 없어 끝내 사양치 않고 명사를 짓노라.
 
"하늘이 준 재주는 후하였는데, 세상에 펼쳐진 것은 어찌 인색하였던가?  복(福)이 공의 몸에 발하지 않고, 자손들에게 발하여 번창한 것인지.....?"

 

 

출처: 경주정씨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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