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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계공(휘승복) 묘갈명  (玉溪公(諱承) 墓碣銘 ) 

 장릉(莊陵 단종의 능호)의 절신(節臣)인 정노송정공(鄭老松亭公)이 나감에 충성을 다하고 물러남에 만절(晩節)을 보전한 현손이 있으니 그 분의 이름은 승복(承復)이고 자는 경윤(景胤)이고 호는 옥계(玉溪)이니 조선조(朝鮮朝) 명종(明宗) 선조(宣祖) 때의 사람이다. 

이제 순천시 동쪽 명말산 간좌(艮坐)에 있는 그 분의 산소에 송심재(宋心齋: 송환기 선생의 아호)가 글을 지은 묘표(墓表)와 김지산(金志山)이 글을 지은 신도비(神道碑)가 있어 공의 충(忠)과 절(節)을 빠짐없이 유양(揄揚)하였다.  그런데도 공의 후손 여러 사람들이 말하기를 「묘갈(墓碣)을 끝내 그만둘 수 없다」 하여 나를 찾아와서 「자네가 공의 방손으로서 글을 너무 아끼지말라」 말하였다.   내가 돌아보건데 문으로는 진실로 불감하지만 인색은 옛 사람이 취(取)하지 않은 것이니 나 또한 인색만은 피(避)하고저 한다.   

경주(慶州) 정씨(鄭氏)가 낙랑후(樂浪候) 지백호(智伯虎)에서 시작되어 신라(新羅)로부터 고려(高麗)에 이르는 동안에 세상에 알려진 인물이 대대로 계속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문정공(文正公)인 진후(珍厚)와 문헌공(文獻公)인 현영(玄英)과 안숙공(安肅公)인 종보(宗補) 같은 분들이 가장 들어났다.  

대를 내려와 지년(知年)은 정헌(靖獻)함이 생육신만 못할 것이 없어 숙모전 서무(西廡)에 배항되었다. 
이 분의 아들 효종(孝終)은 예조참의(禮曹參議)이였고 이 분의 아들 갑선(甲先)은 부사과(副司果)이였으며 이 분의 아들 내(鼐)는 돈용교위(敦勇校尉)니 처음으로 순천에 살았다. 이 분이 개성왕습독(王習讀) 침(琛)의 딸에게 장가 들어 중종(中宗) 1520년(중종15)년에 농장(弄璋)을 하니 이분이 옥계공(玉溪公)이다.   

공은 천성적인 효성이 있어 9세(歲)에 어머니 상(喪)을 당하여 복제 잡음을 예(禮)에 넘게 하였다.  자람에 재주가 뛰어나고 글솜씨가 유창하였으며 기운 또한 범가(泛駕)할 정도였다.  1544년(중종39)에무(武)로 과거에 합격하였고 1548년(명종3)에 아버지 상(喪)을 당하여 모든 예절 지킴을 어머니 상때와 같이 하였으며 복(服)을 마침에 선전관(宣傳官)이 되었고 1552년(명종7)에 옥구현감(沃溝縣監)이되었다. 

1555년(명종10)년에 계조모의 숭중상(承重喪)을 당하었고 그해 여름에 달양도(達梁島)가 왜침을 입으니 공이 기복하여 적을 물리치고 그길로 집에 돌아와 집상(執喪)을 하였고 복(服)을 마침에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이 되었다.   

1559년(명종14)에 왜적(倭賊)이 다시 쳐들어오니 공이 다시 조명(朝命)을 받아 어란진(於蘭鎭)으로 달려가 한 달이 넘게 배를 타고 싸워 마침내 추자도에서 승리를 거두었는데 바람과 빗속에서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니 당시에 감사와 수사가 계속해 칭찬하는 글을 임금에게 올렸다.  

그뒤 자리를 옮겨 웅천현감(熊川縣監)이 되었고 얼마 안되어 영덕현령(盈德縣令)으로 옮기었더니 얼마 안되어 자리에서 물러났다.   

1562년(명종17)에 함흥판관(咸興判官)이 되었다가 파직을 당하니 인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냇가에 정자를 지어 옥계정이라 이름하고 아침 저녁으로 그 곳에서 놀으셨다. 임석천(林石川) 억령(億齡)이 공의 높은 풍치(風致)를 을기를 「친구를 진토객에서 고르지 않고 들의 사슴과 숲의 학(鶴)을 친지로 삼았네」 하니  아! 공의 만절을 이에서 다 알 수 있도다.  

선조(宣祖) 1580년(선조13)년 정월 22일에 돌아가니 나이가 61세였다. 
그 뒤 순조(純祖) 1801(순조1)년과 1812년(순조12)년에 계속해 추은이 있어 증직이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이르렀고 그뒤 1823년(순조23)에 유림(儒林)의 의논이 있어 순천 옥계사(玉溪祠)에 배향되니 유럼(儒林)의 사모(思慕)가 쇠하지 않음을 알수 있다. 

배위가 두 분이니 죽산안씨(竹山安氏)는 군수(郡守)인 수금(秀嶔)의 딸이고 연안김씨(延安金氏)는 부사(府使)인 엽(燁)의 딸로 두 분이 6남4녀를 낳았다.   아들 사안(思安)은 일찍 죽고 사익(思翊)은 부사직(副司直)이고 사준(思竣)은 결성현감(結城縣監)이고 사횡(思竑)은 안음현감(安陰縣監)이고 사정(思靖)은 봉사(奉事)이고 사립(思立)은 태천현감(泰川縣監)이다. 

딸은 주부(主簿)인 정유경(鄭惟敬)과 한척(韓惕)과 찰방(察訪)인 이명남(李命男)과 참의(參議)인 안방준(安邦俊)에게 출가하였는데 사직(司直)은 이름이 사은(四隱: 정포당 정청사 허강호 배매곡)에 들었고 결성 안음 봉사 태천 등은 모두 이충무공(李忠武公)을 쫓아 나라를 위하여 공훈을 세웠고 사위 안참의는 덕학(德學)과 절의(節義)로 일세에 빛나니 사람들이 「공의 나아감에 충성을 다하고 물러옴에 만절을 보전한 풍도가 아직도 끓기지 않았다」 고 말하였다. 

손에 김용(金容)의 처는 장방(長房)의 소생이고 참봉인 돈(惇)과 아산현감(牙山縣監)인 빈과 직장(直長)인 순(恂)과 통덕랑(通德郎)인 열(悅)과 고양군수(高陽郡守)인 운은 이방의 소생이고 부정(副正)인 선(愃)과 주부(主簿)인 론(惀)과 우후(虞候)인 이집(李潗)의 처는 삼방(三房)의 소생이고 선무랑(宣務郎)인 희(憘)와 생원인 회(懷)와 참의인 조기번(趙基蕃)과 감역인 이기영(李耆英)과 현감인 이우신(李遇臣)과 진사인 김우(金俁)의 처는 사방의 소생이고 해남현감인 면(愐)과 출(怵)과 인은 오방의 소생이고 경력인 담(憺)과 통덕랑인 침(忱)은 육방의 소생이며 증손과 현손 및 외손은 이제 다 기록치 못하니 너무도 번창하기 때문이다. 

계속해 명에 이르노니 
「어리석은 저 동왜(東倭)는. 우리의 오랜 적국으로, 1555년(명종10)년과 1559년(명종14)년 두 해에. 봉영처럼 독을 내뿜으니. 공이 기복해 싸움터에 나감에. 남쪽 바다의 풍파는 조용해졌도다. 
여러 고을에 현감이 됨에. 백성들은 안락을 누리더니. 세상에서 물러가고저 하는 마음이 별안간 간절해. 망천(輞川:당의 시인인 왕유의 별장)의 별업처럼 정자를 지었도다. 
공을 누가 알겠는가.  숲의 사슴과 들의 학(鶴)뿐이로다. 생전에는 임석천이 있어. 공의 높은 풍치를 노래했고. 사후에는 송심재(宋心齋)와 김지산(金志山: 김복한 선생의 아호)이 있어. 극진히 칭찬 하였으니.  나같은 독필(禿筆)은. 술만 하고 작하지 않노라.  글은 졸하나 사적은 아름다우니.  길이 백세에 전하리‥‥‥! 」

방손 동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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