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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송정공 휘 지년 묘비명 역문 (老松亭公 諱 知年 墓碑銘 譯文)    後孫 捧均 撰

 

선조 노송정부군(老松亭府君)의 이름은 지년(知年)이고 자는 유영(有永)이니 노송정(老松亭)은 호이고 정은 성이다.  경주가 본관인데 시조 지백호는 육대인(六大人)의 한분으로 신라가 건국될 때를 당하여 꾀를 내고 나라를 도운 것이 소하(蕭何 한고조의 공신으로 시호는 문종)와 장량(張良 한고조의 충신으로 시호는 문성)이 한고조(漢高祖)를 도운 것과 같아 낙랑후를 봉하였다.  그 뒤 그분의 유지에 힘입어 신라 千년 동안에 대대로 공고(公孤 삼공과 육경을 일컫음)가 계속되어 드디어 많은 성씨의 으뜸이 되니 이제 다 기록할 수 없다.

 

고려 때에 문정공 진후의 계()는 금자광록대부이고 작()은 평장사이니 이 분이 부군의 八대조가 된다.  이분의 아들 금실은 상서이고 이분의 아들 보기는 우상(右相 우의정 이란 뜻)에 시호가 창렬공이며 이분의 아들 위는 좌복야이고 이분의 아들 현영은 문하시중에 시호가 문헌공이며 제단(祭壇)이 정읍에 있으니 이 어른이 부군에게 고조가 된다.  증조 종보는 대제학에 시호가 안숙공이고 할아버지 인검은 랑장인데 증직이 군기시정이고 아버지 염은 생원에 올라 교도니 손자의 귀로 병조참의에 추증 되었고 어머니는 최씨로 묵의 따님이다.

 

이태조 을해(乙亥 태조 四 三九六)에 부군을 향제(鄕第 고향의집)에서 낳으니 기질은 청수하고 그릇은 커서 어려서 희롱함이 영특하여 보통 아이와 달랐으며 부모를 섬기는 효와 어른을 받드는 공경이 특출함이 있었다.  자람에 문장이 세상을 울릴 정도였다.  벼슬길에 나아가 교도(敎導四학의 교수)에 이르렀으니 세종 무오(戊午 世宗二十 一四三八)에 충렬공 하위지와 문충공 성삼문 등과 더불어 함께 문과(文科 지금의 고등고시)에 오르니 세상에서 동방(同榜)에 인물이 많다 일컫었다.  한원(翰院 한림원과 예문관의 명칭)과 삼사(三司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의 함칭)를 지나 중훈대부 성균사예에 올랐다. 

 

단종 을해(乙亥 단종 三 一四五五)에 세상의 일이 점점 변하니 부군께서는 미리 느낌이 있어 육신(六臣 생사육신을 뜻함)과 더불어 눈물을 흘리며 경회루 아래에서 작별하고 또 선산을 찾아가 하충렬공과 영결(永訣 영원히 이별함)하고 물러와 남원의 요천 서쪽 교룡(蛟龍 기념물 오호 교룡산성) 남쪽에 숨으니 대개 조상의 산소가 있는 곳을 취한 것이다.

 

조상 산소 아래에 정자를 지어 노송정(老松亭)이라 이름하고 스스로 망칠옹(望七翁 여섯 사람에 하나를 더한다는 뜻)이라 칭하니 그 깊은 뜻이 나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육신(六臣)에 일인을 보탠다는 뜻이다.  박공 희권이 효재(孝哉) 충재(忠哉)라 칭찬 하였고 매월당 김공 시습이 당당(堂堂)하고 늠늠(凜凜)이라 일컫었다.  그 뒤로 시골에 숨어 세상을 잊고 살다가 세조 임오(壬午 세조 八 一四六二) 정월 十九일에 노송정에서 돌아가니 듣는 사람이 원근을 막론하고 모두 실해(失楷)한 것을 슬퍼 하였으며 아버지 산소 아래 자좌에 안장 되었다.  뒷날 아들의 귀 때문에 순충적덕보조공신 숭록대부 의정부 좌찬성 겸 지의금부사 지경연사 홍문관 대제학 계림군에 추증 되었다. 

 

순조 신사(辛巳 순조 二一 一八二一)에 임실의 덕암서원에 배향 되엇고 二년 뒤인 계미(癸未 순조 二三 一八二三)에 순천의 옥계사에 배향 되었으며 그 뒤 병인(丙寅 서기 一九二六)에 사림에서 숙모전 서무에 배향 하자는 의논이 있어 드디어 배향되니 세상에 의론을 아는 사람들이 상쾌하게 생각 하였다.  부인 삼계주씨는 현감 창의 딸이니 생졸이 모두 부군과 같은 해인데 돌아간 날이 부군보다 삼일 뒤이니 순이 아닌 순이다.

 

四남을 두었는데 모두 효자(孝字)로 이름을 지었으며 또 모두 문과에 올라 맏이 효항은 이조판서를 역임 하였고 둘째 효상은 역시 이조판서에 시호가 제안공이며 셋째 효종은 예조참의 겸오위장 이였고 넷째 효본은 황해감사니 대개 부군의 유계(遺戒 후세 사람을 위하여 끼쳐둔 훈계)에 말한 이의를 계승하여 당구(堂構 조상의 세입)를 변치 말라는 것이 헛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딸은 주부 안속생에게 출가 했다.  손자는 모두 八명인데 수선 득선은 큰 아들의 소생이고 별제인 홍선과 교위인 창선과 교리인 영호의 아내와 생원인 구원지의 아내는 둘째 아들의 소생이고 사과인 갑선은 셋째 아들의 소생이고 진사인 광선은 넷째 아들의 소생이다.  증손과 현손은 많아 기록치 않는다.

 

대개 사람들의 절의에 대해 누구인들 귀중함을 알지 못할까마는 진실로 웅어(熊魚 의리와 불의)를 변별할 때를 만나면 능히 평소에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혹 백 명 중에 한 사람 이거나 혹은 천 명 중에 두 사람이 있을 정도이니 그 귀중함이 과연 어느 정도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사적이 파묻혀 사람 들에게 알려지고 세상에 인정을 받는 것이 가까운 곳에 있지 않고 먼 곳에 있다면 이것이 다행인가 불행인가?  우리 선조의 일이 불행 하게도 이에 가깝지만 복선(福善 행복하고 착함)의 천리(天理 천지 자연의 도리)가 끝내 어긋나지 않아 원사의 배향과 전무의 배향이 모두 생육신과 사육신의 위치에 뒤질 것이 없으니 이 점이 부군의 육인첨일(六人添一)의 희망이 이룩된 것이 아닌가?

 

또 하물며 자손의 번창함이 천명뿐만 아니라 만 명이 되고 만명뿐만이 아니라 억 명에 이름과 동시에 충의의 전통이 성대하게 백세(百世)에 이어지고 시례의 가풍이 풍성하게 천추에 간단(間斷 사이가 떨어져 끊긴 곳) 되지 않았다.  다만 산소 앞에 있는 빗돌의 돌이 작고 글이 간단해 사적이 누락된 것이 있어 자손들이 유감으로 여겼더니 이제 종력으로 고쳐 세우게 되었다.  불초가 일을 담당한 사람으로 감히 글을 고쳐 짓는 일을 맏게 되었으니 혹 참람된 일이 아닌지?  명을 지어 이르노니

 

경주 정씨의 전통은 충효가 위대 하도다.  앞과 뒤에 계속되어 옛과 이제에 상대가 없도다.  조선에 이르러 또 누가 있던가?  부군의 위대함 이로다.  더군다나 부군의 만난 세상은 절의의 기회로다.  한번 송현에 숨어 망칠로 호를하니 육신(六臣)과 더불어 칠신(七臣)이 되어 그 지조 굳건 하도다.  청한자(김시습선생을 일컫음)의 늠늠 당당하다는 말은 천고의 월단지평(月旦之評)이니 누가 능히 딴말을 하랴?  두 서원과 한 전무에서 조두가 변치 않으니 빛나는 꽃다운 이름이여 백세에 우뚝하리!

 

출처:  경주정씨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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