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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氏族의 脈은 人類 공통의 價値 〓
  
잠시 쉬어가는 의미에서 이 “氏族의 脈”(族譜)에 관한 유래를 간단히 살펴보자.    
이 씨족의 맥은 일찍이 중국 한(漢)나라 제왕가(帝王家)의 계통기록을 효시로 하고 있다.
즉 제왕년표(帝王年表)에 왕실계통의 가족들을 기록한 것이 시초가 되고 있다.  뒤이어 사대부가에서도 개인의 내력과 조상의 열력(閱歷)등을 적어 내려 옴으로써 그 가계는 물론 씨족의 맥을 알 수있게 한 것이다.

우리민족 역시 왕실의 가족계통을 기록한데서부터 시작됐다. 고려시대 들어 시작됐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비록 왕일지라도 성씨가 없었고, 삼국시대 후기 들어 왕들이나 호족들의 성씨가 일부 통용됐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신라시대 초기의 왕족 3개성과 호족 6개성은 역사적 근거보다 전해 내려오는 얘기에 의존하는 것이어서 추정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후대에서 보면 삼국시대였건 고려시대였던 간에 족보의 형태를 띈 「가계의 기록」은 왕실계통이나 호족계통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鄭氏는 이 범주에  들어간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고구려나 백제에서는 후기들어 성을 가지면서 남궁, 황보, 제갈 등 주로 복성을 사용했고, 일본이 복성위주로 돼 있는 것은 백제문화의 유입에 의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던 성을 가짐으로써 씨족사가 형성되고 이 씨족사가 곧 대동보나 족보의 형태로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한 조상을 뿌리로 하여 후손들의 흐름을 기록해 내려온 이 「씨족사」 (氏族史)는 곧 나라의 역사가 되면서 당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나의 뿌리나 그 맥을 알게 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같은 자료가 없는 어느 개인이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뿌리 찾기 작업을 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과 경비가 필요 할 것이며 또 가능한 일이겠는가.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잡혀 미국으로 건너왔던 「쿤타킨테」의 후손이 자기 조상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기록한「뿌리」(알렉스 헤일리)라는 책이 전 세계인의 공감을 얻으면서 영화로도 만들어져 크게 히트했다는 사실은 뭣을 의미하는가.  현세를 살아가는 세계인들은 그만큼 자신의 뿌리나 혈통 등에 관한 관심과 애착을 가지면서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일찍이 왕가나 귀족계급이 지배했던 서양문화권에서는 그들 일가(一家)의 계통을 보다 명확하게 체계화해오면서 이 가통(家統)을 세습적으로 이어   내려오고 있다. (합스부르그 家, 부로봉 家, 메디치 家...등)

유럽대륙 전체에 걸쳐있던 수많은 영주(領主)들이 그들 나름의 일가를 형성해오면서 가문을 알리는 문장(紋章)만으로도 가세를 떨친 적이 있지 않았던가.  이 문장을 마차에 표시하거나 깃발을 세워 위세를 부렸다는 것은 가문의 정통성을 그만치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하나의 척도로 봐도 될 것이다. 

그 씨족계열에서 로마 교황청의 교황을 몇 명이나 배출했는가? (교권이 왕권을 지배한 적이 있었다.) 또는 왕이 작위를 내렸던 귀족(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의 후예인가? 등에 대해서도 명문가의 잣대를 들이대는가 하면 이에 들지 못한 일반인들도 나름대로의 씨족체계를 확립해 가고 있다.  신분제도가 없어진 현재에도 명문가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대단할뿐아니라그 후손들 역시 사회 기여도를 높이면서 가성(家聲)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민(移民)들로 형성된 미국은 이민이전의 조상에서부터 내려온 뿌리를 근거로 그 씨족의 맥을 계속 이어가는 후손들이 많고, 심지어는 “보학” (譜學)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학문분야로까지 발전시켜 가고 있다.

미국은 현재에도 정치가문 또는 재벌가문이라는 등의 이름을 붙여 당해 씨족들의 사회적 가치를 높이 부여하고 있지 않은가.  그 가문에서 2대의 대통령을 배출한 애덤스, 해리슨, 루즈벨트, 부시 가문  등을 비롯 태프트나 케네디 가문 등 유명 정치인들을 많이 배출한 집안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여기에 록펠러나 포드 등 수많은 재벌 가문들도 나름대로의 씨족 전통을 고수해 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과거부터 내려온 전통적 사회체계가 아니었음에도 이같이 씨족의 맥을 놓지 않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인가.  어찌 보면 동양권보다 서양권에서 뿌리나 혈통 또는 씨족의 맥에 관해 더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을 정도다.

정통가문의 후손들은 현재에도 그 용모나 자태에서 범상치 않음을 풍기고 있으며 자부심 역시 대단하다.
인도(印度)의 경우는 현재에도 가계(家系)를 기준으로 한 신분계급(카스트 제도)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도 문명화에 뒤떨어진 밀림속의 원주민이나 섬나라의 원주민들도 조상대대로 내려온 형상물(동물 또는 꽃)을 몸에 문신(紋身)으로 새겨 혈통의 맥을 내보이고 있다.   

이 어찌 족보나 세보의 가치를 과소평가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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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삿갓의 방랑
  
우리에게 방랑시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김삿갓(金笠)은 「씨족의 맥」을 몰랐다가 평생 삿갓을 쓰고 세상을 풍자해 가며 전국을 주유했다.

김삿갓은 이조 말엽 김병연(金炳淵)이라는 본명으로 과거에 급제, 높은 벼슬에 오를 수있는 발판을 마련했었다.
그런데 강원도 영월에 피해 살던 어머니로부터 자기 할아버지에 관한 연유를 설명 듣고는, 피눈물을 흘리며 인륜을 저버려 하늘을 쳐다볼 수 없다하여 삿갓을 쓰고 방랑길에 나섰던 것이다.
김삿갓은 가는 곳마다 해학이나 풍자시를 남겨 그 천재성을 내보였다.

그의 할아버지 김익순(金益淳:안동 김씨)은 평안도 선천부사(宣川府使)로 재직 중 홍경래(洪景來)난 (1881년, 순조11년. 서북인 차별대우 철폐, 안동김씨 세도정권 혁파)이 일어나자 투항해버려 역적으로 내몰렸던 것이다.
후에 사면받기는 했지만 이로인해 멸족의 형을 받았던 집안이었다.

병연은 과거시험 시제(試題)의 하나였던 「역적 익순」을 선택, 할아버지 인 줄도 모르고 마음껒 조롱하는 시를 읊어 장원급제를 했던 것이다.  급제후 어머니로부터 이 같은 집안 내력을 들은 병연은 자책감에 의해 처자식은 물론 모든 것을 집어 던지고 삿갓 하나와 지팽이만으로 방랑생활을 하다가 57세때 전라남도 동복(同腹:화순)에서 객사했다.

씨족의 맥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시제를 다른 것으로 택할 수도 있었고,  또 그 천재성을 나라 정치에 반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씨족의 맥을 몰랐던 데서 비롯된 후유증이 비단 이것뿐이겠는가.
인척관계를 좀처럼 챙기기 어려운 산업사회의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이라 본다.

2010년 6월 경주정씨 문헌공파 69세손 鄭亨來(賢均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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