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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공 휘 진후 신도비명 역문( 譯文)    후손 동휘 찬

 

지난 경오(庚午서기一九九○ ) 년에 온 일가들이 나로 하여금 문정공의 묘단(墓壇)  비문을 짓도록 명 하면서 말하기를「오늘에서 선조의 세대까지는 千년이 가까이 되었는데도 비석이 아직 없으니 오늘날 세상에 아침에 장사하고 저녁때 비석을 세우는것에 비교하면 일이 너무도 운니(雲泥:하늘과 땅 거리가 멀다는뜻)처럼 거리가 멀으니 이 점은 우리씨족의 크나큰 수치이다。그러므로 빗돌을 삼가 마련하였노라」하거늘 내가 일은 소중하고 글을 지을 사람은 너무도 가볍다는 점으로 사양 하였으나 종중의 명령이 한번 내려짐에 당랑(螳螂오줌싸개) 같은 내가 수레바퀴를 막을 수 없어 드디어 힘써 적었으나 다만 사적이 세대의 멀므로 인해 남은것은 적고 없어진것은 많다。아직 그 남은것에 나아가 적은 부분으로 많은 부분을 대신해 한편으로는 종명을 이행하고 한편으로는 씨족의 수치를 해결할 것을 도모 했으나 모기가 어깨에 태산을 진것같아  능히 감내치 못할까 염려가 간절 하였었다。

 

 금년 가을에 우리문중에 문헌(文獻)을 수집하는 일이있어 집안일을 주장하는 분이 거듭  나에게 말하기를 「경오년의 일로 종중의 수치는 조금 덜었으나 큰벼슬 지낸분은 큰비를 세워야되는 전례로 살펴보면 격식이 맞지 않는점이있고 또 하물며 조상의 남긴 사적을 드러내 천지간에 길이 전하는것은 비석보다 더 낳은것이 없음이랴?」하며 인하여 경오년처럼 명하였다。 스스로 생각컨데 전국의 글하는 사람 중에는 당연히 이글을 지을만한 사람이 많을것인데 먼저와 이번의 두번의 명이 모두 나에게 돌아오니 그뜻이 조상의 사적을 아는것이 후손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이에 미침에 글을 사양함이 종명을 따르는것보다 어려워 이에 족보를 근본으로하고 가정에 전해 오는말을 참고로하여 글을 쓰노라。
 
 공의 이름은 진후( 珍厚) 이고 호는 매포(梅圃) 며 성은 경주정씨로 정씨는 국중의 대성이니 그 뿌리가 몹시멀다。삼한(三韓) 끝에 대인(大人) 이 경주땅 화산(花山) 에 탄강한 분이 있으니 지백호이다。
 
 이분이 뒷날 진지촌장으로 혁거세를 도와 신라를 세우고 인해 낙랑후에 봉해지니 이분이 시조로 그어진것이 순(舜) 의 오신(五臣순나라의어진신하五인이있음)과 더불어 육신(六臣)이 될만하고 고신씨( 高辛氏) 의 팔원(元고신씨와여덟아들이모두어질었음) 과 더불어 구원(九元) 이 될만할 정도였다。

 

그분의 현손 동충은 유리왕이 사성(賜姓)  할 때를 당하여 정씨로 성을 받았다。그뒤로 은청(銀靑) 과 금자(金紫)같은 벼슬이 계속 되었는데 그중의 대강만을 기록하면 시림군 년과 정간공 유천과 경렬공 현성과 월성부원군 달강 등이 혹은 충으로 공을 드러냈고 혹은 덕으로 후손에게 물려주어 후손의 번창하고 혁혁함이 진(晋) 의 왕씨 사씨에 못하지 않을 정도이다。

 

월성부원군(달강) 의 아들 경문은 상장군이고 이어른의 아들 성지는 밀직부사이며 이분의 아들 손경은 좌복야이고 이분의 아들 극중은 계(階) 가 대광이고 벼슬이 정승이며 수가 백세가 넘으니 남들이 말하기를 「큰덕이 있는분은 위치가있고 수가 있는 것이다」 하였으니 이어른이 공의 아버지이고 어머니홍씨는 좌복야관의 딸이었다。이분을 아버지로 이분을 어머니로하여 이분들이 아들 두명을 낳았는데 공은 그중의 맏이이다。

 

공의 태어나고 돌아간 연대는 기록이 없고 다만 족보에 벼슬은 금자광록대부 정당문학 병부상서겸 판군기시윤 평장사월성군 문정공으로 기록되어 있고 또 가정에 전하는 말에는 공의 문장과 명예가 높아 남들이 따라갈 수 없다 하였다。아! 얼마 안되는 이것을 근거로하여많은 부분을 증명하면 당연히 천추(千秋) 에 전하는 사업은 우뚝하고 일대에 가득한 명예는 화려한것이 있었을 것인데 세대가 오래 됨으로 인해 오늘날 그러지 못하니 공자(孔子) 가 오늘에 있으면 문헌이 부족 하다는 탄식을 기송(杞宋) 에 금치 못했을 것이다。

 

옛날을 우러르고 이제를 굽어봄에 한스러움이 무엇이 이에 지나랴!  그렇지만 안자(顔子)의 호학이 불천노(不遷努)  불이과(不貳過)  여섯 글자에 밝혀졌고 자공(子貢)의  언시(言詩)가  여절 여차 여탁 여마 두글귀에 증명이 되었다면 족보의 공에대한 간단한 글귀와 가정의 공에대한 짧은말이 공을 상고함에 또한 족히 하나를 들어 전체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있으니 어찌 꼭 온솥의 국을 먹어야 고기맛 을 알 수 있으랴?

 

부인은 두분이 있으니 전부인은 강릉김씨로 한림굉의 딸이고 뒤부인은 청주이씨로 주지사 공승의 딸이다。아들 금실은 대장군이고 손자 보기는 우상에 시호는 창렬공이고 이기는 월성위이다。

 

증손은 세명이 있으니 좌복야인 위(偉)와 사재경인 교(僑)는 우상(寶奇)의 아들이고 중랑장인 준은 월성위의 아들이다。 현손 또한 세명이 있으니 현영은 영상에 시호는 문헌공이니 복야(위)의 아들이고 공단(公但)은 삼사시랑이니 사재(교) 의 아들이고 광한(光漢)은 대장군이니 중랑(준)의 아들이며 공의 남긴 음덕이 길이 五대손 六대손 아래 까지도 쇠하지 않아 능히 자손의 번창과 벼슬의 계속됨을 이룩하니 이점이 더욱더 공은 기록이 없어도 가히 후세에 전하고 전함이 없어도 가히 영구할 것이 아니겠는가? 

 

대개 공의 산소가 실전된지 오래고 다만 백운대에 있다는 말이 지방 노인들의 입을 통해 전해옴이 오래 되었더니 조선조 영조(英祖) 정조(正祖)때에 후손중에 조상 추모함에 마음이 돈독한 분이 말하기를 「노인들의 입으로 전하는 말의 믿을만함이 사실은 기록 있는것보다 못하지 않다」하고 이에 백운대에 가서 두루 찾았으나 한산에 사위(四位)의 산소가 있고 또 증거할 만한 지식 비석이 없는지라 다만 단을 만들고 표석을 세워 제사를 올리는 장소를 마련한지가 수백년이 지난 오늘에 많은 일가들이 계속해 말하기를 「공이 우리 정씨의 중조(中祖) 로서 벼슬은 제일 높은것에 올랐고 덕은 크게 물려주어 자손의 번창함이 팔도에 기록할 정도인데도 제단(祭壇)의 규모가 너무 초라함을 면치 못하니 어찌 능히 사람들의 우러러 봄을 새롭게하여 영구히 어리석은 사람을 경동 시킬 수 있으랴?  또 돌아 보건대 이산은 시조 낙랑후의 산소가 있 는곳이다。 족장(族葬씨족단위로산소를쓰는것) 의 법으로 살펴보나 전설로 참작함에 공의 산소가 이산에 있는것은 십의 칠팔이 의심이 없다 말할 수 있는데 겨우 단(壇) 이라고만 칭하니 옳은것이 못된다 하고 이에 김태사(金太師안동김씨의시조)  선평(宣平)의 천동산에 있는 묘단(墓壇)의  전례를 취하여 묘단(墓壇)으로 이름을 하니 증거없는 일은 아닐것이다。

 

이것으로 서를 하고 또 그뒤에 명을 잇노니 「위대하다 취산(視山) 은 정씨의 시조로 사업이 위대하고 공로가 커서, 후손에게 복을 물려줌이 크도다。가지처럼 나뉘고 잎처럼 흩어진 후손들。꽃다운 공이 대대로 이었도다。 훌륭하다! 공이시여。때를 맞추어 태어나 이같은 큰터를 이어받아 벼슬이 금자(金紫)에올 랐고 또 시호가 문과정으로 받았도다。 덕행이 시호로 인해 세상에 들어나니 세상의 공의는 정해졌도다. 공을 구함에 문헌이 부족하다 말하지 말라,  불천불이에 안자의 호학을 알 수 있도다.  백운대에 산소가 많으니 이것인가?  저것인가?  곳의 산소가 분명치 않도다。 이에 단을 마련하고 비석은 세워 제사를 올리니 어찌 감히추원(追遠)한다 말하랴?  정성을 표함에 불과 하도다。 많은 후손들이 좋은때를 택해 비석을 세우니 만년억년에 세상의 끝이없으랴… … ! 」

 

출처: 경주정씨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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